2020-03-22-tellestration-day-01

제랄드 와인버그의 <테크니컬 리더>를 오랜만에 완독했고, 매 챕터 마지막마다 제시되어 있는 실습들을 조금씩 해보고 있다. 한동안 안 쓰던 저널을 매일 쓴지 한달쯤 됐고, 오늘은 의도적 수련의 일환으로 이 실습을 시작했다.

(5부 변화, 22장 변화 계획 중) “작은 기술을 하나 선택하여 오늘부터 하루에 세 번, 매회 15분씩 연습해 보자. 그리고 거기에 자신이 어떤 반응을 하는지 관찰하고 일기에 기록해 보자.”

  • 1단계: 개인적 달성 목표를 세운다. 그 목표는 안전하고 새로운 것이며 스스로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도달한 성과 수준을 곧바로 알 수 있어야 한다.
  • 2단계: 첫날에는 성과의 기준선을 정한다. 그다음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연습하고 매일 일기에 진행 상태를 기록한다.
  • 3단계: 마지막 날에는 성과를 보여줄 수 있도록 준비하고 달성을 위해 노력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야기한다.

우선 어떤 기술을 연습할지 선택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코드 리팩토링 등 개발자로서의 본업에 연관된 일은 새로운 게 아니라고 생각하여 일부러 고르지 않았다. (지금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충분히 “새롭게” 연습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생각난 후보는 “거울 보며 웃는 연습하기”, “누군가에게 아무 용건 없이 연락하기”, “그림 그리기” 따위였고 그림 그리기를 선택했다. 요즘 재택근무고 하니, 아기가 있는 집안 풍경을 크로키하듯 스케치하는 걸 해보면 재밌을 것 같았다.

막상 시작하려고 해보니, 단순히 “그림 그리기”로는 성과 수준을 정하거나 스스로 인지하기 어렵다는 걸 바로 깨달았다. 어떻게 그리면 “잘 그리는” 것인가? 아, 그래서 그림을 처음 그릴 때 사진을 놓거나 정물을 보고 그리면서 “얼마나 비슷하게” 표현하는지를 보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크로키보다는 사진을 보고 따라그리기를 할까 하다가, 텔레스트레이션이 떠올랐다.

텔레스트레이션은 여러 사람이 스케치북에 각자 주어진 단어(A)를 1분 안에 문자/숫자 없이 그리고(A’), 스케치북을 옆사람에게 넘겨 그림이 무슨 단어였는지 맞추고(B), 그걸 다시 옆에 넘겨 단어를 보고 그림그리는(B’) 걸 자기 스케치북이 돌아올 때까지 반복하는 보드게임이다. 내가 15분동안 단어 몇 개를 그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중 몇 개를 지원씨가 보고 맞출 수 있는지를 성과로 보면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오늘치를 시작했다.

교훈

오늘 그린 5개 단어 중 지원씨가 3.5개를 맞췄는데, 고작 15분동안 그렸지만 소소하게 깨달은 게 많다.

  1. 첫 단어를 그리기 시작하자마자 깨달은 것. 사진 보고 그리기와 텔레스트레이션은 연습하는 기술이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눈에 보이는 걸 비슷하게 그리는 훈련, 후자는 개념을 표현하는 훈련. 후자가 (즉흥연기와 비슷하기도 하고) 응용할 만한 여지가 더 크다.
  2. 텔레스트레이션 룰 중 1분 안에 그려야 한다는 규칙은 이번에 일부러 안 지켰지만, 문자와 숫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지켰는데 이렇게 하니 개념 표현이 아주 어려웠다. UI 구현할 때 아이콘만으로 의도를 표현하기 어려우면 문자도 같이 넣으라는 조언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3. 텔레스트레이션 스케치북 구성상 정답을 앞에 써두고 그 다음 그림을 그렸는데, 이렇게 하니 지원씨에게 넘겨가며 맞춰보도록 할 때 실수로 정답을 보여줄까봐 불안했다. 내일은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림 뒤에 정답을 적어놓으려 한다. 역량을 발전시키는 데에 피드백이 중요하다면, 피드백 주는 사람이 더 쉽게/정확하게 줄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다. 내가 그린 그림을 지원씨가 맞추는 광경을 시뮬레이션해봤다면 정답을 처음부터 뒤에 놓았을 것 같다.
  4. 그림 5개를 그리면서 화살표를 여러 번 사용했는데,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지만 쓸 때마다 의도가 달랐다(“그림 안의 여러 사물 중 이것”, “둘 사이의 관계”, “이것을 해석하는 데 저것을 활용”). 내가 화살표를 사용하는 방식을 지원씨가 이해하면 할수록 찰떡같이 정답을 맞출 확률도 올라갈 것이다. 즉 “텔레스트레이션 그림 그리기” 연습의 점수를 높이는 데에, 내가 그림을 더 많이 / 더 잘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원씨가 내 의도를 잘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단순하게 나 자신의 기술 역량을 향상시키는 것보다 어쩌면 협업하는 사람과의 라포를 형성하고 내 의도를 잘 이해시키는 게 더 협업 성과를 올리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